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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교수가 노동자의 권리를 이야기 했다. 노동삼권,노동자..이 이야기를 듣던 대학생이 손을 들었다. 

    "교수님 저는  노동자가 되기 싫습니다. 저는 사무직에서 근무할 겁니다."


1. 쉬운해고.

얼마전 쉬운해고 하기 쉽도록 정부지침이 정해졌다. 사실 일 잘하는 사람, 일 못하는 사람에 대한 기준은 무엇인지에 대하여 제대로 설명하지 못하는게 함정이다. 상사의 주관적 잣대에 따라 달라지기 때문이다. 한마디로 쉬운해고는 노동자에게 절대적으로 불리한 상태를 만들게 된다.


노동자는 한마디로 고용당하여 월급받고 일하는 사람을 총칭할 수 있다. 월급받고 일한다면 노동자가 확실하다.






2. 이세돌 vs 알파고 격돌

 바둑은 체스보다 더 복잡한 게임이다. 구글이 개발한 인공지능 딥마인드 컴퓨터인 '알파고'는 지난 9일 이세돌과의 격돌에서 첫판을 이겼다. 이세돌도 당황했고, 사람들도 당황했다. 아직 4판이 남았고 이세돌은 50%승률이라고 자신했다. 하지만 이세돌은 절대 알파고를 이길 수 없다고 생각한다. 전자계산기의 연산능력을 사람이 따라잡을 수 없듯이 말이다. .

구글 AI의 의미는, 컴퓨터가 인간을 뛰어넘었다는데 있다. 인간에게는 '창의성'이 있다고 하지만, 컴퓨터역시 어느정도 이러한 부분을 따라잡을 수 있는 정도의 수준까지 진화했다는건 간과해서 안된다.

로봇이 가사일을 하고, 마트에서 계산해주고, 금융정보의 빅데이터를 이용해 금융예측을 하고, 투자를 한다면.. 그분야에 종사하던 사람들은 어떻게 될까? 




3. 일자리의 미래

 기계가 발전해서 일자리가 없어지게 될까, 아니면 새로운 종류의 일자리가 많이 나오게 될까? 지금까지는 일자리가 사라지면 그자리는 기계가 대신하는 것을 목격했다. 은행에서 대부분이  ATM기가 텔러를 대신하듯이, 이제 비서의 자리도 SIRI같은 AI프로그램에 밀릴 가능성이 매우 높아졌다. 


 하지만 지금과 다른 '새로운' 일자리가 나타날 것이다.


지금도 상당수 신문기사는 AI프로그램들이 대신쓰고 있다. 



우리나라의 미래는 첩첩산중이다. 고령화로 경제탄력을 이미 상실했다. 생산가능인구가 점차 줄어들어 노인부양하는데 나라재정을 온통 다 쓸판이다. 점차 이러한 현상이 가속화된다는게 문제다. 

일본의 경우 현재 취업율이 매우 높다고 한다. 우리나라 대학생들은 현재 취업을 못하는 상태지만, 현재 일본은 일자리가 넘쳐 대학만 졸업하면 취업할 만큼 좋아졌다. 이것은 일본경제가 좋아져서 일자리가 생긴게 아니라, 생산가능인구가 줄어들면서 상대적으로 일자리가 넘쳐나는 것처럼 보이는 착시효과다.


일자리는 더 줄어든게 확실한데, 저출산 영향으로 줄어든 일자리보다 대학졸업생들이 줄어들었기 때문이다.


다행히도 현재 AI나 로봇기술은 상용화 되지 않았다.

현재 우리나라의 초등학생들이 앞으로 15년후 사회에 취업할때즈음이면 AI가 상당히 보급될 것이고 일자리는 오히려 기계에 밀려 줄어들 가능성이 계속 높아진다. 


쉬운해고, AI 상황에서 이제 정규직마저 '비정규직'으로 흘러가고 있다. 교사는 이미 매력을 잃은지 오래고, 공무원도 지자체 파산의 가능성이 높아져 '안전 빵'은 절대 아닐것이다. 


그럼 앞으로 무엇을 먹고사냐고?


좀더 창의적인 분야에 기회가 존재한다고 확신한다. 

SNS 스타, 아프리카 방송 스타.. Youtube 스타... 이런 것은 과거 경제학교과서에도 나오지 않는 직업현상으로 이것은 시작에 불과한다. 1인방송은 물론 1인기업화가 가속화 될것이 확실해진다. 

특히 지식산업이 엔터테인먼트와 결합하는 현상, 네트워크를 통한 1인 재능활동은 상업활동과 결합할 것이고 또다시 새로운 '기회'를 만들어 낼 것이다.


학부모 3명중 1명이 자식이 '공무원'되길 원하는데 큰일날소리.. 


물론 국가가 거덜나기전에 공무원은 영원하겠지만, 공무원역시 앞으로 위기이후 철밥통이란 고정관념이 깨어질 것이라 생각한다.








불행히도.. 현재의 정부는 미래에 관심없다는 확신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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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2
17

현재 박근혜정권의 모습은 조선후기 북벌론을 주장하는 모습이 떠오른다.







 17~18세기 중국 청나라를 정복하겠다고 조선지도자들이 여론을 펼친것이다.

하지만, 당시 청나라는 세계1위국가였다. 세계에서 가장 부강한 국가였다는 뜻이다. 정치는 물론 경제, 사회, 문화까지 세계에서 최강국이 청나라였다. 당시 '북벌론'은 오늘날 '미국'을 치겠다고 말하는 것과 동일한 허황된 논리였다.


북벌론을 주창한 사람은 효종으로 인조의 둘째아들 봉림대군이었다한다. 

효종은 즉위한 후 김상헌과 송시열 등 반청 척화론자를 좌의정, 우의정에 등용했다. 송시열은 반청이지만, "잘못되면 조선이 멸망한다"고 말할정도로 신중하라고 말했으나 

효종의 말이 가관이다.


" 멸망당한들 무엇이 두렵냐

만세에 이름을 떨칠것이다" 

(현종실록, 즉위 9월 계해) 



나라하나쯤 망하면 어떠냐? 지금 지지층들이 나를 더욱더 견고히 받쳐줄 것이고 나는 이름을 떨치고, 남기게 될텐데 말이란 뜻이다. 나라가 피해보면서 수많은 백성들이 고통당하든 말든 지금의 내상태에서 '이름남기면 좋다'는 무책임한 태도이다. 이러한 망국적 행태는 친일매국노들에게도 고스란히 나타난다. 이완용은 어땠나? 


효종을 비롯해 당시 사대부는 왕성 경비 군사력을 강화하고, 북벌론을 앞세우며 백성들을 긴장시켰다. 그들은 관심을밖으로 돌려 전쟁의 패배와 그에 대한 책임, 전쟁 후의 정치적 경제적 위기를 호도하는데 바빴다. 이것이 효종과 조선의 사대부가 추구했던 북벌론의 실체(이삼성, 2009; 154~155) 라 한다. 외부의 군사적 위협을 문제삼아 내부적 결속을 강화하고 지배력을 강화하려는 국가 경영 전략이었다.

                                                                                                     (못난 조선, 문소영. P.339)



박근혜 대통령이 직접 북한의 붕괴, 그리고 정권교체를 말했다. 



국정교과서는 물론 경제적추락, 세월호사건.. 내부정치로부터 발생하는 수많은 국가적 문제들을 덮고 그위에 또 덮는 방식은 국가적 불행일 수 있다.  점차 수위가 쎄져야 먹히는 포르노처럼 문제는 문제로 덮는 방식과 내부정치를 위해서 국제정세까지 이용하는 것은 망국적인 요소라 할 수 있다.








대한민국은 창조경제, 지하경제양성화.. 본연의 박근혜정부가 부르짖었던 융성과는 전혀 엉뚱한 길로 가고 있다. 개성공단마저 문을 닫아버리면서 심각한 타격을 받는 곳은 북한이 아니라 우리나라 국민이 되었다. 중국견제용 사드 배치로 G2이자 무역의 60%를 기대고 있는 중국과는 완전히 틀어져버렸다. 군사적으로는 물론, 경제적으로도 실리를 하나도 챙기지 못했다. 이제 남은것은 고고도미사일이 내뿜는 엄청난 레이더 전자파를 대체 우리나라 어느지역에 배치할까로 남은 국론마저 분열하고 있으며, '사드는 필요하지만 우리지역만은 안된다'는 궤변이 나오고 있다. 












외교력도, 경제력도 실종된 상태로 오로지 국내정치와 선거를 염두한 지배력강화에만 몰두하는 모습이 조선후기 북벌론을 주창하는 효종의 모습  보는듯하다. 북벌론은 결국 조선후기 몰락하고 있는 왕실과 지배층의 국내 지배전략이었을 뿐이다. 실체도 없었고, 명분도 없는 북벌론은 오늘날 북한에 대처하는 보수정권의 민낯을 고스란히 보여준다.  



계속 파탄나는 수출



늘어나는 국가부채율




외교력도, 경제력도 다 팽개쳐도 좋다, 다만 국내 지배력만 얻으면 된다고 생각하는 지배권력의 무지몽매한 행태가 매우 볼썽사납다.


북한정권은 궤멸되어야 하는게 맞다. 하지만, 외교력과 경제력, 소프트파워를 발휘하는게 우선이다. 그러기 위해서 외교가 필요하고, 국제정치가 필요하다. 하지만 현재 박근혜정부는 내부지배와 정치를 위해 국제정세마저 이용하는 모습은 무지함을 넘어 위험하기까지 하다.


사드배치와 퇴행적대치는 대한민국의 경제적, 외교적 자살골일수 밖에 없는 이유를 조선후기 터무니 없던 북벌론의 역사에서 본다. 역사는 반복된다는 말처럼 무서운 말이 없다. 우리는 늘 이러한 반복적인 무지와 고통을 왜 항상 반복해서 경험해야 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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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2
17

히가시노 게이고의 소설 '방황하는 칼날' 



우리나라에서 영화로 제작된적 있다. 책으로는 굉장히 두껍지만, 문체가 쉽고 내용전개가 빨라서 흥미진하게 읽을 수 있다. 겨울 휴가지에서 하루만에 읽었다는.. 방황하는 칼날






법이 범죄자를 보호한다면 믿겨지는가? 법은 국민과 사회시스템을 위해서 존재한다. 하지만 법의 이중성과 모순은 늘 존재한다. 

법 하면 떠오르는 말은


"유전무죄 무전유죄"

"법은멀고 주먹은 가깝다"


소설 '방황하는 칼날'에서 법은 멀고 주먹은 가깝지만, 개인의 원한과 복수를 인정하지 않는 현재의 사법시스템에서 '복수'라는 것은 피의자와 피해자가 뒤바뀌는 결과를 가져오는 결과를 가져온다. 


방황하는 칼날은 유전무죄, 무전유죄를 말하는게 아니다.

또한 법은 멀고 주먹은 가깝다는 것을 말하는 것도 아니다.


정의를 위해존재하는 법이 불의를 위해 봉사하는 역기능을 고발하는 것이다.


몇가지 생각할점이 있다.




1. 내가 납치강간, 살해당한 딸의 아버지라면?

  - 주인공은 자신의 딸을 납치, 강간 살해한 살인범을 모두 찾아나선다. 한명은 현장에서 무참히 살해한다. 

    살인은 나쁘지만, 자신의 딸을 고기취급한 강간살해범앞에서 '살인'은 과연 나쁘기만 한것인가, 복수는 늘 피해자가 참아야 하는 것인가를 생각하게 해준다. 살해당하나 딸의 아버지라면 동일하게 범죄자를 잡아 죽이겠다는 생각을 하는게 당연하다. 하지만 실정법상 복수는 인정되지 않기 때문에 복수를 하는 순간 피해자에서 가해자로 변하게 되는게 함정..


2. 법은 누구를 위해 존재하는가? 

   - 영화속에서 법은 피해자가 아니라, 살인자를 보호해주는 역할을 한다. 과연 그것이 '정의'라고 할 수 있는가?



정의는 어려운것이다. 히가시노게이고가 말하는 법의 부조리는 더욱 그러하다. 어쩌면 정의란 것은 '픽션'일수도 있을것이다.

하지만, 정의가 제대로 선 사회일수록  '공정사회', '선진국'일 수 있다.


법이 대상에 따라서 고무줄늘어나듯이 제맘대로 적용된다면, 일절의 희망도 기대할 수 없을것이다. 그런데 불행히도 우리사회는 그런 사회에 가깝다. 유전무죄, 무전유죄가 통하는 사회이며, 대상에 따라 법이 적용될수도 있고 안될수도 있는 불공정 사회인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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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 작가사공 서비스에 대한 특허청 출원-등록 완료  ( 2014.12.2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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